과거에 저희동네 (현(명동)은 홈실마을이라 불렀었습니다.
명동,명곡에 동일하게 들어가는 단어인 명(椧)
은 우리말로 '홈'을 뜻하며 농사를 지을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사용한 홈(椧)을 일제강점기때
한자로 바뀌며 명(椧)으로 바뀌었다고해요.
"홈 그거는 홈실이라 했는데, 옛날에는 농사를 짓는다고 홈대를 대가지고 농사를 지었거든예. 여짝으로 가다보면 옛날에 뭐를 가지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바위에 홈을 파가꼬 그리로 물을 낸 흔적이 지금도 있습니더. 지금은 뭐 저수지로 해서 농업용수로 만들어서 다 하지만, 옛날에는 여기 물이 억수로 귀했거든예. 그래가꼬 바위를 뭘로 뜯어냈는지는 몰라도 물이 내려가도록 홈을 만들었다 아닌교.”(이자무, 명동마을 이장, 62세)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저희동네인 명동(과거 명동마을)은 인근에 대운산(불광산)이 위치해있고 그곳에 시명골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과거에는 골짜기가 제법 깊었다고해요.그래서 주변에 위치한 논과 밭으로 물을 보낼수가 없었는데 그래서 마을주민들이 시명골에
상,중,하에 보(洑)를 막아서 논에 물어 대었지요그런데 도랑을 설치해 물길을 따라 논에 물을 보내다 보니, 도랑이 너무 길어 물이 땅에 스며들어 논에는 물이 제대로 가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고해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지혜를 짜 낸 것이 바로 긴 나무나 대나무로 홈(椧)을 파고 홈과 홈을 연결하여 논으로 물을 보내는 것이었지요
이 홈실이라는 지명의 흔적은 바로 인근에 위치한 마을이름에서 찾아볼수있는데 그 마을의 이름은 외홈마을이라고하며 홈실마을의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이 지명은 현재에도 사용이 되고있지요